[수동식 게시대]
한국의 경마는 고객 상호간에 돈을 거는 패리뮤추얼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경마의 공정성을 높여주는 대신 매우 복잡하고 방대한 계산 작업을 필요로 합니다
경마장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전광판의 배당률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을
보았을 텐데요~ 초보자들은 배당률이 낮은 말이 우승가능성이
높은 인기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배당률을 계산해주는 장치를 ‘토털리제이터(totalizator)'라고 합니다
지금의 토털리제이터는 모두 컴퓨터가 계산을 하는 전자식이지만, 최초의 토털리제이터는
19세기 초 뉴질랜드의 엔지니어 죠지 줄리어스가 개발한 기계식 토털리제이터였습니다
죠지 줄리어스는 원래 이 기계를 선거용 투표계수기로 납품하고 싶어 했으나 뉴질랜드
정부가 거절하는 바람에 경마장으로 눈을 돌린 것이였죠. 이 기계식 토털리제이터는
1966년 전자식 토털리제이터가 나올 때까지 전 세계 경마장에 보급되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뚝섬 경마장에는 기계식 토털리제이터조차 없었기 때문에 모든
배당률 계산을 수작업으로 했습니다
당시 한국마사회는 배당률 계산을 위해서 주산과 암산에 뛰어난 ‘계산의 달인’들을
특채했는데, 지금도 간부급 직원들 중에는 주산 1급, 암산경시대회 우승자 등
‘인간 계산기’들이 남아 있습니다
요즘 경마팬들은 구매시간 중에 실시간으로 변하는 배당률을 보고 인기마를 알 수
있지만, 당시에는 발매창구 앞에 늘어선 줄의 길이가 인기의 척도였습니다
(당시에는 마번 별로 창구가 달랐음)
하지만 입장인원과 매출액이 증가하면서 수작업으로는 한계에 달하게 됐고,
한국마사회는 1982년부터 본격적으로 발매전산화를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문가들의 비교 검토 결과 미국 오토토트 社의 발매기가 채택되어 83년 장비공급
계약을 맺고, 1984년 1월 드디어 전산화가 실현되었습니다
60년 동안 주판으로 집계하고 산출하던 수동업무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발매전산화로 대량의 마권을 신속하게 발행할 수 있게 되고,
고객은 배당률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빠르고 신속한 베팅이 가능한 것이겠죠?
[과천으로 1989년 9월에 서울경마장이 이전을 하였다]
[2003년도 까지 사용한 서울경마장의 마권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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