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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이야기△▶

세계경마_최고의 씨수말'노던댄서'

by 고급인사 2009. 5. 22.

 

 

 

 

세계 더러브렛 경주마의 3대 주류 혈맥은

‘노던댄서계’, ‘나스룰라계’, ‘네이티브댄서계’를 꼽는다.

이 중 노던댄서는 현재 전 세계 더러브렛의 반 이상이 그의 혈통을 차지할 만큼

세계 경마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경주마다.

노던댄서는 1961년 5월27일 캐나다의 윈드필드목장에서 부마 네아크틱과 모마

나탈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마주이자 생산자인 테일러는 캐나다의 대부호였는데

윈드필드 목장과 우드바인경마장을 세울 만큼 캐나다에서의 경마발전에

관심이 높았던 인물이었다.

유명한 경주마들이 대부분 그렇듯 노던댄서도 재미난 일화가 있다.

이 경주마는 체구가 상당히 왜소해 성체가 되었을 때에도 160㎝ 밖에 되지 않아

 ‘runt(꼬마)’라는 별명으로 불리기조차 했다.

체구가 큰 경주마들이 잘 달린다는 일반적인 견해 때문인지 1세마 경매였던

 ‘Pre-Priced Yearling Sale’에서 그는 마주들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다.

 

홀대를 받던 바로 그 경주마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을

보면 경주마의 세계는 한 마디로 속단하기는 힘든 것 같다.

노던댄서는 조기성숙형 경주마였다. 그의 전성기는 2세와 3세의

 2년으로 상당히 짧은 기간이었다.

그러나 그가 활약했던 2년의 경주성적은 화려하여 통산 18전14승, 2착2회, 3착2회의

성적을 거두었고, 수득상금 58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1964년 켄터키더비 경주장면.노던댄서 이야기]

 

 

 

 


우승이력을 살펴보면, 2세 때의 코로네이션 퓨튜리티와 렘센 스테이크스 등의 경주에서

9전7승, 3세 때의 플로리다더비와 켄터키더비,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

등에서 9전7승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미국 3관경주에서 2관에는 성공했지만 벨몬트 스테이크스에서

왼쪽 앞다리 근육 파열로 3착에 머물러 3관마(Triple Crown)에는 오르지 못했다.

 

 


 [1964년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 경주장면]

  

 

 

 


노던댄서는 뒷다리의 고질적인 문제로 우드바인 경마장에서 열린 2,000m

퀸즈플레이트 경주에서의 우승을 끝으로 경주마로서의 짧은 활약을 마친다. 이후

1965년부터 캐나다 오샤와 목장에서 씨수말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다.

사실 노던댄서는 경주마로서도 훌륭했지만 씨수말로서는 아직까지도 세계 최고로 꼽힌다.

 

 노던댄서는 635마리의 자마를 생산했고, 그중 511두가 경주마가 되었으며, 410두가

우승을 차지했고, 146두는 대상경주의 우승마였다.

그의 대표적인 자마로는 영국의 3관마인 니진스키를 비롯, 댄지그, 스톰버드,

더 민스트렐 등을 들 수 있으며 현재 최고의 종부료를 자랑하는 스톰캣(Storm Cat)

또한 그의 자손이다.

당시 그의 1회 교배료는 100만 달러까지 치솟아 “정액 1cc가 다이아몬드 1캐럿의

값과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노던댄서의 자마들의 우수한 성적으로 1970년에는 미국의 리딩사이어로 뽑혔고,

1970년, 77년, 83년, 84년에는 영국의 리딩사이어를 차지하는 등 부마로서

그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씨수말로 이름을 드날렸던 노던댄서는 1990년 11월16일, 29세로

그가 태어난 윈드필드 목장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