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동아의 양형모 기자와 문세영.김려진부부 인터뷰 내용 입니다]
[원문.사진 출처-스포츠동아.양형모기자]
양형모가 만난사람....
혹시나 말을 타고 오는 건 아니겠지 싶었더니, 역시나 그들은 자동차를 타고
약속장소인 과천 서울경마공원에 나타났다.
신혼의 달콤함이 버터처럼 녹아 초여름의 햇살에 반짝였다. 서울경마공원의 스타
문세영(29) 기수와 경마공원 김려진(28) 아나운서 부부.
지난 달 9일에 식을 올렸으니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된 새내기 부부다.
인터뷰는 경마공원 해피빌의 기자실에서 가졌다. 평일 낮이어서인지 다른 기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고의 기수로 매 주 자신만의 신화를 쌓아나가는
리딩 자키와 어여쁜 신부의 만남이 궁금했다.
애마남편과 애마부인의 이야기는 가정의 달 5월에도 ‘딱’일 것 같았다.
- 신혼 한 달을 어떻게 지냈나요?
문(세영): “좀 바빴죠. 남남끼리 만나서 같이 마음 맞춰 산다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우리만 결혼한 게 아니라 양가의 관계도 있고. 출근 시간대가 다르다보니(기수는 말을
훈련시키기 위해 새벽에 출근한다) 서로 얼굴 보기도 만만치 않아요.”
서울경마공원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경주를 한다. 출전기수들은 보안을 위해
토요일에는 경마공원 내 숙소에서 지낸다
.
- 러브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만나게 됐지요?
김(려진): “제가 경마공원 아나운서잖아요. 경주하는 모습을 봤죠. 하루 4승, 5승씩
하길래 처음엔 ‘쟤 뭐냐?’하다가 ‘저 사람 누구야?’가 되고, 나중에는
‘멋있다!’까지 가게 된 거죠.”
그러던 어느 날 김려진 아나운서가 문기수를 인터뷰할 일이 생겼다.
통상적이고 사무적인 인터뷰였다. 서로의 존재감만 확인한 자리였다. 그래도 처녀,
총각의 만남이 아닌가. 농담 식으로 “언제 밥 한 번 먹어요”하고 헤어졌다.
짓궂고 장난기가 많은 카메라맨 선배가 있었다. 틈만 나면 “두 사람 언제
밥 먹을 거야?”하고 놀려대곤 했다.
2007년 여름 경마계에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던진 사고가 발생했다. 기수협회장을 지낸
임대규 기수가 낙마사고로 사망하고 만 것이었다.
김 씨는 문상을 갔다가 빈소에서 문 기수를 보았다. 눈인사만 하고 지나쳤는데, 나중에
누군가 김 씨에게 “문 기수가 김 아나운서 나이를 물어 보더라”하고 말해 주었다.
장지로 가는 길은 가파른 언덕이었다. 두 사람에게 “언제 밥 먹을 거냐” 놀려대던 카메라맨은
무거운 장비를 둘러매고 한 여름 태양 아래서 혀를 빼물고 있었다.
그때 문 기수가 옆에서 음료수를 건넸다. 우리나라 최고 스타기수의 친절에 카메라맨은
그만 감동을 ‘먹고’ 말았다. 언덕길을 오르며 내내 뭔가 고민하던 카메라맨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김: “사무실에 있는데 선배가 전화를 했더라고요. ‘잠깐 있어 봐’하더니 바꿔줬어요.
누군지도 몰랐죠. ‘저 문 기순데요’ 하길래 ‘왜 밥 안 사 주세요?’했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밥 사 준다던 사람은 연락이 없었다. 선배는 “이상하다.
문 기수가 네 휴대폰 번호 따갔는데”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9월 추석 즈음 김 씨가 대구 집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문자메시지가 왔다. ‘김려진 씨
핸드폰인가요? 그때 밥 사 주러 간다는 사람인데요.’
이리하여 사랑의 씨앗은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통화도 했지만 애틋한 밀어는 주로 문자메시지를 통해 오고갔다.
- 왜 그렇게 뜸을 들였던 겁니까?
문: “임대규 기수가 가시고 난 후 두 달 정도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기수 한 명이 그렇게 비명에 가고 나면 나머지 기수들은 충격에 빠지게 되지요.
사고의 주인공이 당장 내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과연 계속 이 일을
해야 하는 건가 … 회의도 들지요.”
문 기수도 큰일을 당할 뻔했다. 국제경주 기간 중 새벽에 말을 훈련시키다가 실수로
떨어지면서 말에게 가슴을 채였다. 심장이 멈췄다. 응급실로 실려 가는 동안 심폐소생술을
해야 했다. 조교사와 마필 관계자들이 모두 병원으로 몰려왔다.
문: “심장이 다시 뛰니까 사람들이 천운이라고 했어요. 우리나라 대표로 나간 건데 빠져선
안 되잖아요. 깨어나자마자 다음 날 바로 경기에 나갔죠.”
사고는 2008년 10월 2일에 일어났고 공교롭게도 문 기수의 생일이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다시 태어났다고 했다. 그날 이후 문 기수는 ‘이 심장이 뛰는 한 말을 타겠다’고 마음먹었다.
- 프러포즈는 어떻게 했나요?
김: “평소 세뇌를 당했죠 뭐. 주문을 건다고 해야 하나. ‘넌 나와 결혼해야 돼’,
‘우리 미래엔 이렇게 살자’ 같은 얘기를 꾸준히 하더라고요.
그러다 fm라디오 ‘컬투쇼’에 문 기수와 방송팀 직원이 함께 출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프러포즈를 받았어요.”
청춘남녀의 만남에 사랑싸움이 없을 수는 없다. 두 사람도 위기가 있었다. 김 씨가
문 기수에게 선언했다. 이번 그랑프리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안 만나주겠다라고.
그 대회에서 문 기수가 우승을 했다.
1등으로 골인하고는 김 씨가 앉아 있는 방송실을 향해 말채찍을 치켜들어 보였다.
세리머니이자 일종의 ‘시위’였다. 김 씨가 “그때 우승해서 계속 만나게 된 거죠”하며 웃었다.
문 기수의 성품을 엿보게 하는 에피소드 하나.
김 씨는 집에 내려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ktx를 탔다. 잠시 후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혼자 보내서 불안해. 내가 따라 갔어야 하는 건데.’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라, 김 씨는 ‘정말 연인같네’하며
웃었다. 대충 답장을 보내놓고는 잠을 청했다.
눈을 감고 있는데 누군가가 옆 자리에 앉으면서 툭 쳤다. 눈을 떠보니
문 기수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문: “차표를 제가 예매해 줬거든요. 예매하면서 옆 자리를 몰래 예약해 놨던 거죠.”
이렇게 일을 꾸며놓고는 서울역이 아닌 광명역 플랫폼에 서서 ‘혼자 보내서 불안하다’
운운의 문자메시지를 찍고 있는 음흉한(?) 문 기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길. 과연
이 대목에서 감동받지 않을 대한민국 여인이 있을까 싶다.
일반 회사하고는 다르겠지만 이들도 엄연한 직장커플이다.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직장커플의 고통에 대해 공감할 부분이 있으리라.
문: “아무래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었죠. 이 사람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대놓고 만나지도 못했어요.
경마공원 안에서는 얼굴도 마주치지 않았고요. 주로 과천을 벗어나 사당이나
이수역 쪽에서 몰래 만나야 했죠.”
- 결혼하고 나니 회사에서도 달라진 점이 있겠지요?
김: “평소 ‘아, 문세영? 걔 말이야’하던 사람들이 요즘엔 ‘세영 씨’로 호칭이 바뀌더라고요.
제가 어리니까 연세가 좀 계신 분들은 ‘문 서방’이라고 부르시죠.”
- 혹시 말을 타면서 데이트도 하셨나요?
문: “한 번도 못 탔어요. 승마는 꼭 배우게 하고 싶어요. 말하고 교감하는 자체가 좋잖아요.
(직접 가르치실 건가요?) 저요? 전 안 돼요. 지금 승마하라고 하면 못 하거든요.
경마경주와 승마는 쓰는 근육부터가 완전히 달라요. 아마 기수들한테 당장 승마를
하라고 하면 허리가 아파서도 못 할 거예요.”
- 최근 종방한 드라마 ‘내조의 여왕’이 인기였지요. 내조는 어떻게 하시나요?
김: “저도 그 드라마 봤어요. 항상 고민이죠 뭐. 주변 분들이 ‘우리나라 최고 기수인데
네가 잘 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해 주세요. ‘누구는 내조를 이렇게 한다.
그 사람한테 배워라’고 하시기도 하죠. 그런데 전 제 방식대로 하고 싶어요.”
김 씨의 방식은 긍정적 의미에서의 ‘방치’에 가깝다. 문 기수의 승부욕과 일 욕심은
경마계에서 소문이 났다. 그래서 충분히 일할 수 있도록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다.
아직 젊기에 체력을 위한 보양식보다는 마음의 보양식을 챙겨주고 싶다. 그래서 평소
“나도 월급을 받으니, 당신은 취미로 말을 탄다는 마음으로 하라”고 말한다.
김 씨는 스스로 ‘금요일에는 절대 화가 나도 싸우지 말자’라는 원칙을 세워놓았다.
주말 경주에 남편이 편히 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저녁밥만은 집에서 꼭 해 먹인다.
신랑의 입맛은 꽤나 토속적이어서 쌈, 청국장 같은 걸 좋아한다. 스파게티 따위는
입에도 대기 싫어한다. 데이트할 때도 두 사람이 가장 많이 먹었던
메뉴는 올갱이무침 백반이었다.
말 앞에 선 두 사람은 더 없이 다정해 보였다. 남편은 말을 타고, 아내는 말을 탄 남편을
방송으로 내보낸다. 그리고 저녁에는 된장찌개를 끓여 함께 밥을 먹는다.
문 기수가 시익 웃더니 한 마디 했다.
“결혼 잘 했어요. 전엔 스트레스 많이 쌓고 살았죠. 하루 종일 지난 경주 틀어놓고 보는
게 일이었는데, 다 부질없는 짓이란 걸 알게 됐어요. 이젠 이 사람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다 풀려요.”
어쩐지 대한민국 경마계의 ‘문세영 시대’는 꽤 오래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의 육감은 주가와 부동산 빼고는 지금까지 90% 이상의 적중률을 보여 왔다.
다른 기수들에게는 꽤 미안한 얘기가 되겠지만.
문세영 기수는 지난해 상금랭킹 1위를 기록했다. 1년 동안 경주에 나가 벌어들인
상금수익은 총 46억 4000 여 만원.
그러나 이 상금을 문기수가 모두 갖는 것은 아니다. 문기수는 이 중 7.17%인
3억3000만원 가량을 자신의 몫으로 챙겼다.
기수의 주 수입원은 경주에 나가 받는 상금이다. 당연하지만 모든 기수가 다 상금을
받는 것은 아니다. 9~12마리 정도가 뛰는 한 경주에서 상금을 받으려면 5위 안에
들어야 한다. 이를 착순상금이라 한다.
상금율은 매년 조금씩 변경되지만 2009년 기준으로 1등에게는 총 상금의 53%가
돌아간다. 2등은 22%, 3등 13%, 4등 7%, 5등 5%다.
기수가 상금을 받아오면 이를 마주와 조교사, 기수, 마필 관리사가 분배한다.
마주가 80.24%로 상금의 대부분을 갖는다. 조교사가 6.85%, 기수는 6.49%를 받는다.
기수는 상금 외에도 경주에 나설 경우 기승료를, 마방소속 기수는 말에 대한
조교(훈련)수당을 받지만 액수는 그리 많지 않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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