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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경마_세계의 명마 렉싱턴(Lexington)

by 고급인사 2009. 4. 30.

 

 

 

19세기 후반 미국을 가장 주름잡았던 말이 있다면 단연 ‘렉싱턴’이 될 것이다.

 

영국 제1회 더비 우승마인 ‘다이오메드(Diomed, 1777)’의 5대손으로 렉싱턴은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16번이나 리딩 사이어를 차지한 전설적인 명 씨수말이다.

렉싱턴은 1850년 부마 보스턴(Boston)과 모마 앨리스 카니얼(Alice Carneal)

사이에서 태어났다. 주인인 엘리샤 워필드(Elisha Warfield) 박사는 렉싱턴의

조교를 노예 출신인 한 흑인에게 맡긴다.

 

그러나 조교사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달리는 ’버브리즈지(Burbridges) 경주'에 참가할 수

없게 되어 마주의 이름을 조교사로 올려 경주에 참가할 수 있게 된다.

 

나중에 이 조교사는 ‘버브리지즈의 해리(Burbridges' Harry)’라는 별명을 갖게 되며

유명한 조교사가 된다. 렉싱턴의 어릴 적 이름은 ‘달리(Darley)'였다. 달리는 첫 출전

두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그 가능성을 보인다.

 

이 경주마의 경주를 지켜본 리차드 텐 브록(Richard Ten Broeck)은 그가 소속해있던

신디케이트를 대표해 달리를 2,500달러에 사게 되고, ’렉싱턴‘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텐 브록은 렉싱턴을 미시시피로 보내 프라이어(J.B. Prior)에게 조교를 맡긴다.

 

렉싱턴은 겨우 3, 4세의 나이로 4마일 경주(6400m) 경주에 7번 출주하여 6번의 우승과

2착 1회의 성적을 거둔다. 그가 참가한 경주 중 가장 유명한 경주는 1855년에 경주마

 ‘르콩트(Lecomte)’와 펼친 경주를 꼽는다.

 

라이벌이었던 르콩트는 당시 최고의 경주마로서 렉싱턴과 같은 부마(Boston)를 가졌다.

 

이 경주는 렉싱턴의 가장 유명한 경주로도 꼽히지만 세기의 경주로도 꼽히고 있다.

 

 

 

 

그러나 렉싱턴은 1855년 부마 보스톤이 그랬던 것처럼 점점 시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그는 경주마 인생을 접고 난투라 스톡 농장

(Nantura Stock Farm)에서 장기간 방치된다.

그러다 1858년 렉싱턴은 당시 경주마로서는 최고가인 15,000달러에 로버트

알렉산더(Robert A. Alexander)에게 팔린다.

 

알렉산더는 켄터키의 자기 소유의 우드번 농장(Woodburn Farm)으로 렉싱턴을 데려갔다.

 

사실 렉싱턴은 경주마 시절보다 이 곳에서의 생활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는 ‘우드번의 장님 영웅('Blind Hero of Woodburn)’으로 불리며, 1861년부터

1878년까지(1875년 제외) 16번이나 미국의 리딩사이어에 뽑힌다.

 

트레블즈 스테익스(Travel's Stakes)가 시작된 뒤 15년간 9회의 우승을 모두 렉싱턴의

자마들이 차지할 정도였다. 프리크니스 스테익스(Preakness Stakes)에서는

1875년 톰 오칠트리(Tom Ochiltree), 1876년 셜리(Shirley),

1878년 마젠타 듀크(Duke of Magenta)가 우승을 차지하며 렉싱턴의 명성을 날렸다.

 

렉싱턴의 마지막 자마였던 마젠타 듀크도 트레버 스테익스(Travers Stakes),

벨몬트 스테익스(Belmont Stakes), 위더스 스테익스(Withers Stakes)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자마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말은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Ulysses S. Grant)이 좋아했던

신시내티(Cincinnati)이다. 신시내티를 탄 그랜트 장군 동상은 오늘날 미국 전역에서 볼 수 있다.

 

 남북전쟁이 발발 당시 마주였던 알렉산더는 렉싱턴을 숨겼는데 이는 이 명마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최고의 경주마로, 최고의 씨수말로 명성을 날렸던 렉싱턴은 1875년 7월 1일 자신의

보금자리인 우드번 농장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1955년에 국립 경마박물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1978년에는

미국 국립 박물관에 렉싱턴의 뼈를 기증하여 그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좋은 이야기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벨몬트 공원과 키니랜드 경마장에서는 해마다

렉싱턴 스테익스를 열어 그를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