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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이야기△▶

경마베팅_패리뮤추얼의 창시자 요셉 올러

by 고급인사 2009. 3. 4.

 

 

 

경마나 경륜ㆍ경정을 즐겨본 사람이라면 자신이 베팅한 번호에 대한 배당률이

끊임없이 변동하는 것에 익숙할 것이다.

이것은 고객이 시행체를 상대로 돈을 거는 것이 아니라 고객 상호간에 돈을 걸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와 같은 베팅 시스템을

 ‘패리뮤추얼(Parimutuel)’이라고 한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베팅 방식이지만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내기의

배당률은 고정된 것이었다. 시행체의 이득과 손실이 경주결과와 무관한 패리뮤추얼

방식은 ‘고정승률(fixed odds)방식’ 보다 진보된 베팅 방식이다.

이런 획기적인 베팅 방식을 고안해낸 사람은 프랑스의

북메이커(사설마권업자) 요셉 올러(Joseph Oller, 1839~1922)였다.

 

 

 

 

요셉 올러는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나 어릴 때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민 왔다.

나중에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 빌바오 대학에서 공부를 했는데, 여기서 닭싸움에

매료돼 북메이커가 된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올러는 1867년 고객끼리 돈을 거는 새로운 내기 방식을 고안하는데,

이를 ‘패리뮤추얼(Parimutuel)’이라고 명명한다.

패리뮤추얼은 프랑스어로 ‘상호간에 서로 돈을 걸다’(Pari Mutuel)는 뜻이다.

올러는 이 새로운 베팅방식을 프랑스 경마에 성공적으로 도입했으나, 1874년 불법적인

도박을 운영했다해서 15일간 감옥생활을 하고 벌금을 물게 된다. 당시에

패리뮤추얼은 ‘신생 불법 도박’이었던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로부터 17년 후인 1891년, 프랑스 당국은 올러의 패리뮤추얼 베팅을

합법화하고 기존의 고정승률(fixed odds) 베팅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이후 올러의

패리뮤추얼 방식은 전 세계의 경마장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가게 된다.

하지만 정작 요셉 올러를 유명인사로 만든 것은 ‘패리뮤추얼’이 아니라 ‘캬바레’였다.

1876년부터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든 올러는 다양한 극장을 개장했는데, 1889년에

개장한 ‘물랭루즈’라는 캬바레가 ‘캉캉춤’으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물랭루즈는 전 유럽에 캬바레가 번성하는 계기가 됐고 미스탱게트, 모리스

슈발리에 같은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패리뮤추얼의 발명자이자 물랭루즈의 창업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요셉 올러는

현재 파리시내에 있는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

 

 

 

 

 

 

패리뮤추얼 제도란?

 

대다수의 사람들은 ‘경마 시행체를 상대로 돈을 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경마 시행체를

상대로 돈을 거는 것이 아니라 고객 상호간에 돈을 거는 것입니다.

 

이를 ‘패리뮤추얼(Parimutual)제도’라고 합니다. 쉬운 예로 서울경마공원에서 20만명의

경마팬이 일요일 제7경주에 총 30억원의 돈을 걸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20만명의 경마팬은 이 돈을 누구를 상대로 건 걸까요? 시행체인 한국마사회에 걸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출주마라는 매개수단을 통하여 20만명 상호간에 돈을 건 것입니다.

 

한국 마사회는 경마팬 상호간에 걸어 놓은 돈을 최첨단 전산장치로 입력시켜 보관하고 있다가

경주결과가 확정되면 배당금을 배분해 주고, 그 대가로 경마팬이 돈에서 일정률을

수수료(수득금)로 공제할 뿐 입니다.

 

패리뮤추얼 제도하에서 돈을 거는 행위는 시행체를 상대로 거는 것이 아니라 경주 자체에

돈을 거는 것이며, 시행체는 그 사이에서 중개인 역할(주식의 경우 증권회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